십계명중 제 4계명이다. (출20:8)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시다.
그래서 우리를 잘 아신다.
그래서 쉬는 것을 명령하셨다.
신학교 시절 세계 종교사를 배우면서 다른 종교에 비해 왜 기독교가 참 생명의 종교인지를 확인하게 된 대목이 있었다.
오직 기독교만이 쉬는 것이 명령이고 율법이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종교는 신을 위해서 인간의 희생을 강요한다.
그러나 오직 기독교만이 신이 인간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셨다.
다른 종교는 철학이나 문화적 산물이고, 기독교만이 진리이고 생명임이 명확해보였다.
목회 초창기 시절 [교회성장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교회가 성장해야 부흥이라고 착각하던 시절이었다.
몇 명이 모이는지, 1년 결산은 얼마인지, 교회를 얼마나 크게 건축했는지가 부흥의 기준이었다.
실제로 그 강의를 들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교회 성장학?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가?
어떻게 하면 목사의 권위가 강화되는가?
전부 그런 내용이었다.
강의 말미 내 강의 노트이 이렇게 썼다.
‘이렇게 하면, 반드시 교회는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교회에 안계신다.’
경악을 금치 못했던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교회를 성장시키려면, 교인들이 정신을 못차릴만큼 많은 사역을 시키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딴 생각을 못하고 맹종의 충성이 나온다는 것이다.
어떤가?
실제로 80년대, 90년대 폭발적인 교회 성장에는 성도들의 맹목적인 헌신과 충성이 있었다.
집 팔고, 아이들 돌반지까지 팔아서 건축헌금을 드리는 것이 최고의 성도였으니까.
그렇게 건축된 교회 안에서 목사들은 자기 것이라고 우기고, 성도들은 지들끼리 싸운다.
정신없이 많은 일들을 맡다보니 성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날이 토요일 오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직장과 학교에서 최선을 다했던 성도들이,
토요일 오후부터는 이제 교회에서 영혼을 갈아 넣는다.
토요일 성가대 연습, 교회 청소, 리더 모임 및 심방과 공과 준비,
그리고 주일 아침 7시부터 성가대 섬김, 1부 예배 참석, 교사 섬김, 주방봉사, 주차 봉사, 청년부 활동, 오후예배, 예배 후 심방, 성가대 연습, 교사 세미나, 뒷정리,
그리고 다시 월요일 새벽기도, 그리고 출근…
어디 안식이 있는가?
혹시 아는가?
월요일에는 목사님들이 쉰다는 것을!
전화도 안받는다.
둘째 교회를 성장시키려면 목사의 권위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씩은 뛰는 말에 채찍을 가하라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 성도중에 간혹 실수하거나 사역의 열매가 부진하면,
공개적으로 책망하라는 것이다.
그 성도가 상처 받고 교회를 떠나면 어떻게 하냐고?
교회 성장학에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비록 한 명이 상처 입고 극단적인 경우 교회를 떠나게 되더라도, (그런 경우도 거의 없지만…)
당신은 강력한 열 명의 추종세력을 얻게 될 것이다.
목사의 권위는 거기에서 나온다.
그 때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왜 대형교회 목사나 사모들이 그렇게 소리를 치고 심지어 교인들을 때리기도 하며 무서웠는지.
담임 전도사로 새삶의 교회를 개척하고 3년 사역 후, 목사 안수를 받기까지 우리 부부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이 있었다.
그 때 예수님이 우리 부부에게 주신 도전이 있다.
“너희들은 교회를 성장시킬래? 아니면 내 종 될래?”
두 말할 필요 없었다.
‘주님의 참 종이 되겠습니다’
동시에 교회성장과 주님의 참된 종이 되는 것이 대척점에 서 있다는 예수님의 진단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래서 울기도 많이 울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율법을 가지고 사람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우고 너희들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는다고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회칠한 무덤 같다고,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셨다.
어느 정도냐면,
안식일에는 5km 이상을 걸어다니면 안된다.
음식을 먹을 때도 다섯 번 이상을 씹으면 안된다.
성 생활도 안된다.
많이 웃어도 안된다. (거룩한게 아니니까…)
그렇게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동시에 그들이 율법의 심판자 노릇을 한 것이다.
어떻게 할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식을 누리라.
그렇다고 주일날 골프치러 가고, 낚시, 등산 가라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은사를 따라 한 두개의 사역이 있으면 좋다.
은사로 쓰임받을 때, 기쁨의 열매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목사가 생명 걸어야 할 책임인데…)
예배가 은혜로워야 한다.
그래야 성도들이 주님 안에 더 머물고 싶어한다.
그렇게 젊은 시절에 교회의 행패(?)에 번아웃을 당한 성도들은
그 반작용으로 이제는 거의 익명의 크리스찬이 되어 간신히 주일 예배만 살짝 드리려고만 한다.
내 친한 친구는 행여 교회에서 뭐 맡길까봐 항상 초신자인척 한다는 얘길 듣고 엄청 웃은 적이 있다.
그것도 올바른 모습은 아니라는 것을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주님 안에서 거룩히 지키자.
자신의 은사를 따라 기쁨으로 섬기자.
손꼽아 기다려지는 주일이라면 가장 행복한 성도다.
그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주님도 당연히 기뻐하신다.
그런 교회 한 번 해보자.
주님이 왕 되시고,
주님 안에서 예배 드림이 가장 설레는 교회.
우리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우리의 자녀들이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르는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