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복 목사 목회칼럼|두로가 망한 이유

개인적으로 에스겔서를 공부하고 있다.
26장부터 28장까지에 나오는 두로에 관한 심판 이야기가 인상깊다.
두로는 성경에 ‘버니게’로 소개되기도 한다.
버니게는 ‘페니키아’의 음역이다.

두로가 얼마나 잘 나갔냐면,
일단 문화적으로 전세계 공용어인 영어의 모체가 바로 페니키아어다.
또한 군사적으로도 매우 뛰어나서 이들이 아프리카로 건너가서 세운 나라가 카르타고다.
카르타고에서 그 유명한 한니발 장군이 나오고, 로마를 거의 멸망 직전까지 끌고 갔던 포에니 전쟁이라는 어원 자체가 라틴어로 페니키아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지리적으로도 두로는 천혜의 요새와 같다.
마치 고려시대의 강화도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몽골이 침략할 때마다, 강화도는 40년 가까이 임시 수도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던 난공불락의 섬이었듯이 두로가 그러했다.

그래서 27장3~25절에 보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역하던 모습, 그로 인해서 막대한 부를 축척함으로 요즘 식으로 말하면 최고급 명품으로 치장하고 살았던 두로의 모습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28장2절 말씀이다.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

마침내 두로는 스스로를 신이라 여길 정도가 되었다.
문화적으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뭐 하나 아쉬울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삶을 영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부(富)가 죄인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축복을 받길 원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부는 죄가 아니다. 오히려 부는 또 다른 사명이다.

두로의 문제는 그 넘치는 복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내가 잘나서, 내가 사업 수완이 좋아서, 내가 이만큼 애썼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내 것이다.’라는 착각이 문제다.
즉 ‘하나님 없음’이 두로의 문제의 핵심이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입을 통하여 ‘교만’이라고 지적하신다.
교만이 뭔가?
교만은 십계명중 제1계명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말씀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하나님을 부인한다.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다.
모든 것을 자기 소견에 옳은데로 결정한다.
반복한다. ‘하나님과 나는 관계 없음’이 교만이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들었지만, 두로는 여전히 교만했다.
그 결과 두로는 갑자기 폭망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헬라의 알렉산더가 두로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 때도 두로는 섬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서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알렉산더가 명령한다. ‘두로까지 잇는 다리를 만들라.’
2천년전 두로를 무너뜨리기 위해 알렉산더는 지중해 바다 위에 교량을 설치한 것이다.
교량을 설치하면서 알렉산더가 얼마나 이를 갈았는지, 완공 후, 처참하게 두로를 진멸했다.

왜 하나님은 이방 나라에 심판을 선포하시는가?
그들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들도 돌이키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끝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버팅기면, 이렇게 폭망한다는 교훈을 오늘의 우리에게도 주시기 위함이다.

모든 죄보다 더한 죄가 교만이다.
그러므로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라.
넘치게 부어주실 때, 그 넘침에 또 다른 사명이 있음을 잊지 말라.
모든 것이 주님과의 관계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디카이오수네’, 즉 의(義)다.
그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