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복 목사 목회칼럼|다윗은 시를 썼다

삶이 한가해서가 아니다.

물려받은 유산이 많아서 유유자적했기 때문이 아니다.

왕이라서 그 권력 앞에 감히 누구도 덤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가장 치열한 삶을 살았다.

때로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자신을 죽이려고 시도하는 참담함을 만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자신의 목숨과도 같았던 부하들의 배신을 경험하기도 했다.

 

다윗은 처음 시작부터 만만하지 않았다.

당대 권력의 최고봉에 있던 왕이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총동원해서

다윗을 표적 삼아 무려 13년을 죽일려고 쫓아 다녔다.

그런데 다윗은 그 때부터 시를 썼다.

자신의 곤고한 삶을 하나님 앞에서 노래했던 것이다.

 

그의 시(편)를 보라.

절망의 시가 많다.

일명 탄식시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그런가하면 저주의 시도 있다.

저주할만큼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픔도 하나님 앞에서 노래했다.

그래서 그 저주스런 인간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잘 알듯이 실제로 다윗에게 사울 왕을 두 번이나 완벽하게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절대로 손대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감사시는 진짜다.

풀무불의 연단을 통과한 감사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물 먹은 솜처럼 지칠대로 지치고 번아웃이 올 정도로 탈진해도

다윗처럼 시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게 되면,

반드시 새 힘을 얻게 된다고.

 

안나 스위르라는 폴란드 시인은 <나의 고통>이라는 시를 통해 이렇게 노래했다.

 

“나의 고통은

쓸모가 있다.

 

그것은 나에게

타인의 고통에 대해 쓸 특권을 준다.

 

나의 고통은 하나의 연필

그것으로 나는 쓴다.”

 

지난 주 이런 설교를 했다.

복음이 뭘까?

그것은 이전의 나로 살 수 없게 만드는 힘이다.

 

하나님 앞에 서라.

재창조되는 나를 만나게 된다.

말할 수 없이 우울하고 슬픈 일이 인생에서 일어나기도 하며, 힘들고 지쳐 쓰러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있다.

그 섭리를 깨닫는 유일한 길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고통을 아뢸 때다.

그게 시며, 노래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서지 않으면

그 숨어있는 섭리를 보지 못하고

우울과 슬픔이 나를 삼켜 버린다.

 

시편을 읽어보자.

분류하면서 읽어보자.

탄식시, 저주시, 감사시등으로.

 

다윗도 하나의 연필이었다.

시편을 읽은 당신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고통의 시를 쓰던 연필로

곧 환희로 가득찬 감사시를 쓸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