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복 목사 목회칼럼|전도축제인 예람제를 하는 이유

30대초반의 한 청년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복음을 완강히 거절했다.
이유를 물었다.
“기독교의 배타성이 싫습니다. 자기들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주장이 거부감을 줍니다.
저는 아직 종교가 없지만, 혹 갖게 된다면 불교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태복음 7:13말씀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다원주의 신학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산 위의 정상은 하나이지만, 그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 길입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민족이든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전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입니다.’

어떤가? 나이스한가? 듣기 좋은가? 동의가 되는가?
그러나 성경의 선언은 분명하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단수다)은 좁고 길이 협착하다.
생명이기 때문에 유일하다. 유일하므로 배타적일 수 밖에 없다.
진리는 하나다. 둘일 수 없다.
너만 사랑해라고 해야 결혼이 된다. 너도 사랑해라고 하면 뺨을 맞아야 한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자기 수양을 통해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솔직해지자. 자기 힘으로 무슨 구원을 이룰 수 있나?
스스로 돌이켜보라. 얼만큼 수양이 되었나? 이쯤이면 구원에 이를만하다고 안심할 수준이 되었나?
오히려 사람을 더 옭아맬뿐이다.
돈많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불교를 좋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부귀영화를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전생에 착하게 살았다. 그래서 이런 부귀영화가 주어진 것이다. 마음껏 누릴 정당성을 준다. 반면에 병들고 가난하고 심지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다. 그래서 지금 그 벌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가 근간을 이루는 인도에는 아직도 차별적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가 있다.
존중해 주어야 하나?
최고의 하층민인 불가촉 천민들에게
“당신의 문화요, 종교이니,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고 사세요”라고 말할 수 있나?

지금 이란이 난리다.
그들의 종교 때문이다.
이슬람에서는 여인들이 히잡을 써야 한다.
여성은 아버지와 남편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슬람의 구원이다.
한 여인이 히잡을 벗을 권리를 요구하다가 끌려가 총살당했다. 다른 여인(16세)도 히잡 거부를 했다가 현장에서 즉결 총살 당했다. 이슬람의 가르침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몇 백년전 이야기가 아니라, 2022년 이란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월드컵이 한창인데, 이란 대표 선수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부르지 않는다. 응원하러 온 이란 국민들도 자신의 국가에 야유를 퍼붓는다.
그들의 종교이니 존중해주라는 말은 그들의 종교의 억압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이들을 더 가슴아프게 할 뿐이다. 그들에게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하다.

성경은 선언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고.
그래서 참된 사람됨의 존귀가 성경에 있다.
조선 말기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고, 그 복음을 영접한 양반들은 머슴을 존대하기 시작했다.
상종못할 머슴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사건이 전북김제에 있는 금산교회의 조덕삼 장로 이야기다. (검색해보라)
복음은 성경에만 있다. 참 구원은 예수님에게만 있다.
참 행복의 길이 좁은 문에 있다.

그래서 그 청년을 또 만나 말한다.
예수님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고.
예수님을 빙자하여 이런 저런 실망스런 모습을 보인 기독교인들을 보지 말고,
성경을 보라고!
너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라고!

12월25일은 성탄절이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다.
그 날 전도축제(예람제)를 한다.
열심히 전도하고,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다.
그 날 복음이 필요한 귀한 영혼들이 많이들 올 것이다.

기도해달라.
오직 예수!의 복음이 뚜렷이 증거되도록.
그들이 오직 예수님만을 붙들게 되도록.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가득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