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복 목사 목회칼럼 – 7.1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됩니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교제가 가능케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즉 사람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절대공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 때만이 그 삶에 생명력이 있고, 의미있는 인생이 됩니다.

반대로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면 본능을 따라 살게 됩니다.
본능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기준은 옆 집 사람입니다.
옆 집 사람이 아파트를 사면 나도 덩달아 삽니다. 영끌해서라도 삽니다.
옆 집 사람이 아이를 어떤 학원에 보내면 나도 기를 쓰고 그 학원을 보냅니다.
코인을 사면 뭔지도 모르고 꼭 사고야 맙니다.
그리고 옆 집 사람보다는 잘해야 하니까 나름 열심을 다합니다.

그런데, 옆집이 기준이었던 삶은,
40대가 되면 지식이 평준화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최종학력이 뭐가 되었든 관계없이, 모이면 ‘뭐 먹었다, 어디가 맛있더라’ 얘기 밖에 없습니다.
50대가 되면 외모가 평준화됩니다. ‘저 사람 멋있었데, 예뻤었데’가 전부입니다. 늘리고 잡아당긴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피부만 상합니다.
60대가 되면 힘이 평준화됩니다. 울퉁불퉁했던 근육은 60대가 되면 아무리 운동해도 근육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더 쭈글쭈글로 바뀝니다. 권력의 힘도 마찬가지입니다. 퇴직한 사장님들 보셨습니까? 똑같습니다.
70대가 되면 재산이 평준화됩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소화를 못하니 먹지를 못하고, 무릎이 아파서 여행도 못갑니다. 동네 산책로 벤치까지만 갑니다.
80대가 되면 생사가 평준화됩니다. 뭐 기업 회장님은 냉동상태로 5년 가까이 누워있다가 갔습니다. 어처구니 없게도 유산에 따른 세금문제 때문에 자식들이 아버지를 얼려 놓았던 것입니다. 누워만 있다가 갑니다.
이것이 옆집이 기준이었던 모든 인생의 삶입니다. 덧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허무주의 철학이 나왔고, 불교는 공수레공수거를 외칩니다. 구원은 없지만, 적어도 철학적 질문에는 적합하다고 여겨집니다.

이번 주부터 구원의 확신 시리즈 설교를 준비해서 시작합니다. 7주 연속으로 합니다.
참석해서 잘 들으시고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열리길 바랍니다.
실시간 온라인 예배를 활용해도 좋겠습니다.
(오전 11시 유튜브 새삶의 교회로 입장하시면 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들으면 기준이 생길 것입니다.
나의 인생이 옆집이 기준이면 너무 불행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