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왈드 스미스 목사의 일기 중 한 대목이다. (구령의 열정, 94페이지)
‘소련에서의 계속된 집회는 영광중의 영광이었다. 영광이 뭔가? 오직 하나님만을 원하는 것이 영광이다. 사람들은 수 킬로미터를 걸어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옥외에서 3시간이나 서서 설교를 들으며, 하나님만을 원하고,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사명으로 고백한다.
하나님의 말씀외에는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상상이 되는가? 오직 이것을 위해 하루에 7차례씩 예배를 드린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광고 전단지조차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당은 말그대로 발디딜 틈조차 없이 사람들로 가득찼으며, 그들의 회개의 눈물과 성령의 임재는 우리 모두를 삼켰다. 불이 임하는다것이 무엇이지 알고 싶으면 이 예배에 참여하면 된다. 전세계를 많이 다녀보지만, 소련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그 영광의 예배를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다. 왜 그럴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미국을 버린 것인가? 나의 고국 캐나다에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단 말인가? 영국은 그런 기회가 있었던가? 왜 오늘 소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이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가? 결국 나의 결론은 그들에게 갈급함이 없다는 것이다. 세월이 좋아질수록 자동차 여행의 유혹이 더 커간다. 그렇게 되니 하나님은 그들의 우선 순위에서 언제나 두번째나 세번째 밑이다’
이것은 1924년 쓰여진 오스왈드 목사의 일기다.
다음은 2024년 (6월22일 토요일 날씨 비.) 김목사의 일기다.
‘오늘의 경험은 매우 인상적이다. 친구들과 가평 휴게소에 들렀을 때, 그 정도일줄은 몰랐다.
날씨도 구질구질했다. 그러나 인산인해였다. 남자 화장실 줄이 그렇게 길게 늘어선 것은 매우 생소한 광경이었다. 그들은 어디를 향해 이렇게 몰려가는가? 이들 중에는 분명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그들에게 내일 예배는 어떤 의미일까?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니, 주말은 항상 이렇다는데. 그들도 30년만의 은사님을 뵈러 가야하는 어쩔 수 없는 길을 가는 중인가?’
부흥은 갈급함의 문제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면서도, 영광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 없어도, 충분히 누리고 산다는 착각 때문이다. 즉 목마름이 없다.
1924년의 일기에도,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024년의 일기에도
내용은 이하동문이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지옥에 간 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그 사람은 날마다 잔치를 벌였다.
요즘 말로 ‘파티인싸’다.
자기 집 대문 앞에 있는 거지 나사로는 자신의 흥을 위한 전리품이었다.
그러다 죽었다. 지옥에 갔다.
지옥에 있는 그의 고백을 유심히 읽어보라.
후회는 있지만 회개는 없다.
지옥은 그런 곳이다.
후회는 넘쳐난다.
그러나 돌이켜 회개할 기회는 없는 곳이 지옥이다.
목마름이 없는 이 시대를 살면서,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주님, 내 심령에 주의 영광에 대한 갈증을 부어주소서.
부흥에 대한 목마름을 주옵소서.
애타게 하시고, 갈급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주의 역사를 기대하게 하옵소서.’
결국 인산인해를 이룰 곳은 천국인가? 지옥인가?
끝으로 이런 안타까움을 가진 오스왈드 목사는 자신의 일기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하나님께서 혹 어려운 재난이나 전쟁, 혹은 곤경을 통해서라도 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배고픔이 생기게 되기를 간구할 수밖에 없다.’
어떤가?
동의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