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3:18 말씀이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히브리어 사전을 보면, 헤브론은 “교제의 자리, 연합, 동맹”이라는 뜻이고, 마므레는 “뜨거운”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헤브론 마므레는 ‘뜨거운 교제의 자리’는 의미가 된다.
이후 헤브론은 아브람의 선산(先山)이 된다. 아브람의 아내 사라를 시작으로, 모든 믿음의 조상들이 헤브론 마므레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將事)되었다.
야곱의 마지막 유언도 애굽에서 총리가 된 아들 요셉의 힘을 빌어 화려한 애굽의 장지를 택하지 않고, 헤브론 마므레에 묻히기를 원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의 찬양으로 유명한 갈렙이 원했던 산지도 역시 헤브론이다.
왜 헤브론 마므레를 사모하는가?
바로 그곳이 하나님과의 뜨거운 연합과 교제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이렇게 설명하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를 떠난 가지는 메말라서 불에 던져 사를 장작으로 사용된다”. (요15:5-6)
뜨거운 교제의 자리, 주와 하나되는 연합의 장소를 사모하라.
예수님과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의미없음이 된다. 허무한 인생이다. 또한 점점 메말라간다. 생기가 사라진다. 삶에 기쁨도, 감사도, 감격도 없다.
나의 ‘헤브론 마므레’가 있어야 한다.
같은 창세기 13장에 등장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은 그게 없었다.
하나님과 뜨거운 교제를 하는 큰아버지 아브람을 보면서도 감흥이 없었다.
롯의 인생에 단 한번도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은 적이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롯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판단을 의지했다.
그랬더니 소돔과 고모라가 여호와의 동산처럼 보였다. 당연히 주저없이 그쪽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 후, 잘 아는대로 소돔과 고모라성에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이 임했고, 풍성했던 롯의 삶은 말라비틀어졌다.
믿음은 선택의 문제다.
뭘 선택할 것인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헤브론 마므레로 갈 것인가? 아니면, 롯처럼 내 판단, 내 결정을 계속 따를 것인가?
지금 당장 헤브론 마므레로 가라.
하나님과 뜨겁게 교제하는 믿음의 중심을 지키는 한, 하나님께서 나머지 모든 것들을 인도하시고 책임져주신다.
포도나무에 잘 붙어있는 가지가 열매를 풍성히 맺는 것은 당연지사다.
깊숙이 더 깊숙이 뜨거운 은혜의 자리로 가라.
놀라운 생명력의 힘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