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신붓감 1등이 교사였다.
안정적인 직장, 후한 연금, 그리고 존경받는 직종이 교사였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지금은 3D 업종의 최고봉이 교사다.
초등학교 교사가 자살했다. 그것도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자신의 죽음으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몇 년 전 중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깜짝 놀랐다. 그때 이미 교권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모습을 봤다.
분명히 수업 중인데, 아이들이 제멋대로다.
선생님은 선생님 앞에 모인 서너 명만 데리고 수업을 한다.
이유를 물었다.
체벌 금지 이후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는 답변을 들었다.
학교 선생님은 무시하면서, 학원 강사는 떠받든다.
체벌 금지 찬성이다.
나는 남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당시 선생님들은 무지막지했다.
60명이 넘는 혈기왕성한 학생들을 통솔해야 하니, 이해는 했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다.
학생들이 선생님으로부터 몽둥이로 수십 차례 맞다가 엉덩이가 터지는 경우도 있었고,
말대꾸했다고 주먹과 발길질로 얼굴과 온몸을 두들겨 맞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피바다, 피바람의 별명을 가진 선생님들이 어느 학교에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20년 전 미국 명문 예일대학교에서 신앙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Back to the Bible’ (성경으로 돌아가자)이 슬로건이었다.
동기는 젊은이들의 끝없는 타락이었다. 마약과 음란과 각종 범죄에 찌든 모습이었다.
백약이 무효였다. 엄격한 처벌도, 달콤한 설득도 다 실패했다.
예일대학 출신 목사님 중에 조나단 에드워즈가 있다. 후에 예일대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말씀의 종이었다. 미국의 영적 대각성 운동의 시작이 그의 설교와 기도였다.
부흥에 관한 유명한 속담이 있다.
‘참된 부흥이 일어나면 동네 나귀도 안다’
이유는? 그렇게 몽둥이 찜질을 하던 주인이 은혜받고, 나귀를 붙들고 사과하며 울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흥 이후 그런 기록들이 많다.
300년 전 대각성 운동의 시작이 성경이었고, 그로 인해 미국 사회 전체가 회복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다시 그 슬로건이 예일대학 정문에 걸린 것이었다.
지금도 해법은 한 가지라고 믿는다.
뉴스를 볼 때마다 이토록 시대가 혼탁해진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교회 실패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의인 10명이 없으면, 그곳은 소돔과 고모라다. 남은 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뿐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통치가 아니라 인간의 술수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복주의에 매몰되고, 성도들은 말씀의 기준은 하나도 없고, 오직 자기 판단으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결정하고 살아간다.
그러니 풍수지리와 샤머니즘에 의존하는 사람이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있는 것이다.
오늘은 어제의 결과다.
또한, 오늘은 내일의 발판이다.
내일이 어떤가?
희망적인가? 이번 대통령 임기만 끝나면, 그때는 다 회복되는가?
긴말이 무슨 필요한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먼저 엎드려 회개해야 한다.
눈물의 기도가 회복되어야 한다.
느헤미야서를 읽어보라.
철저한 자기 회개부터 시작된다. 그래야 참된 개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비로소 무너진 성벽이 세워진다.
깨어지고 박살 난 관계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신뢰가 회복된다.
성경을 보자.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부어달라고 기도해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러면 눈물이 회복된다.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게 된다.
울면 산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