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은 예수님의 첫 설교다.
누구나 들을 수 있게끔 산위에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산상수훈이다.
이 설교 후 3년간의 본격적인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는 요한복음 14-16장에 나온다.
이 설교를 하신 후, 로마군인들에게 붙잡혀 십자가에 달리셨다.
마지막 설교는 비공개적인 설교였다. 마가다락방에서 12제자들만 대상으로 말씀하셨다.
마지막 설교의 마지막 부분은 부활에 대한 것이다.
요16:22 말씀이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때론 낙심하기도 한다. 죄를 짓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실패하고 꺾여도 신앙의 뿌리가 부활신앙에 박혀있으면 무조건 소생케 된다.
살아난다.
그래서 부활신앙이 매우 중요하다.
목회의 여러 위기가 있었다.
그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했다.
‘내가 다시 주님을 보게 된다.’
부활신앙이다.
그러면 소망이 생긴다. 없던 힘도 생긴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다 안다.
그런데 아무런 대비가 없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마귀에게 완전히 속은 것이다.
히9:27 말씀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
심판 후, 생명의 부활로 가는 사람과, 사망의 부활로 가는 사람으로 나뉜다.
주님을 다시 보게 될 준비가 되어있는가?
부활신앙이 확고하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일흔번씩 일곱번도 용서할 수 있다.
얼마든지 양보할 수도 있고, 희생도 감당한다.
부활을 믿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외쳤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그렇다. 부활이 없으면 예수 믿는 사람처럼 불쌍한 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이 있다. 확실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행복한 자 아닌가!
부활 때, 예수님 다시 보게 될 때,
‘수고했다. 착하고 충성된 사랑하는 나의 종아!’
예수님으로부터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래, 오늘도 수고하자. 희생하자. 용서하자.
예수님의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그렇게 살다가
주님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