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 유명배우가 자살했다.
사는게 힘든가?
죽는게 힘든가?
부와 명예를 다 가졌어도, 그 배우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힘들었나보다.
언젠가 한 성도가 질문했다.
‘목사님, 자살하면 지옥가나요?’
우린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우며 자랐다.
자살을 방지한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가르침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구원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 주님의 소관이다.
예를 들어, 로마가 기독교를 엄청나게 박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중에 한 기록을 보면, 믿음 때문에 끔찍한 고문과 수치를 당해야 될 자신의 자녀들에게
어머니가 천국의 확신을 전해주며 독약을 탄 음식을 준다. 그리고 자신도 그 음식을 먹고 죽었다.
그 여인은 살인죄와 자살죄니까 당연히 지옥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나?
따라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요한복음 1:12 말씀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을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믿음의 스위치를 계속 누르는거다.
한밤중에 집에 들어가면 캄캄하다.
그런데 스위치를 누르면 당연히 환해진다.
전기가 이미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구원도, 믿음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셨다.
문제는 영접이다.
난 자격이 없어서,
난 믿음이 없어서라고 말하지 말라.
오늘도 열심히 믿음의 스위치를 누르라.
자녀됨의 권세가 임한다.
자, 믿음의 스위치를 눌러보자.
‘언제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주님께 나의 삶을 의탁합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순종할 때, 예비하신 은혜가 부어짐을 믿습니다.’
어떤가?
환해졌는가?
환해졌으면, 이제는 동행하는 순종으로.
아직도 어두우면, 더 세게 누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