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5:2 말씀이다.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성전 뜰에 서 있기만 해도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부으시는 은혜를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어둠은 실체가 없다. 빛의 부재가 어둠일 뿐이다.
두려움, 염려, 근심도 마찬가지다. 실체가 없다. 다만 믿음이 빠진 빈자리에 발생할 뿐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채우면, 두려움은 자동적으로 사라진다.
한 동안 비대면 예배, 즉 온라인 예배가 드려졌다.
지금은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비대면 예배를 즐기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머물기만 해도 부어주시는 은혜를 몰라서 그런 것이다.
적어도 일년에 한 두번은 잠실 야구장을 갔다.
야구장에 가면 포수 뒷자리 좌석을 선호한다.
선수들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숨소리도 들린다.
투수가 던지는 볼의 스피드가 체감된다.
볼을 향해서 전력으로 뛰는 선수들의 스파이크 소리가 심장을 뛰게 만든다.
최고의 퀄리티를 갖춘 TV라 할지라도 현장을 따라 잡을 수는 없다.
아내를 설득해서 함께 야구장을 갔다.
아내의 총평은 이렇다.
일단은 TV로 볼 때와는 다르게 너무나 작은 야구장에 실망했다.
TV처럼 해설을 들을 수 없으니 재미없어 했다.
TV처럼 리플래이도 없다. 클로즈업도 없다.
무엇보다도 TV는 공짜인데, 현장에는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하필 그날 바람도 많이 불어 추웠다)
아내의 결론이다. ‘다음부터 야구는 TV로!’
그 다음부터는 야구장에 혼자 간다.
일부러 혼자 간다. 친구들을 꼬시지도 않는다. 야구를 오롯이 즐기기 위해서다.
야구는 비대면도 괜찮다.
(올해는 아직 한 번도 못갔다)
그러나 예배는 현장이어야 한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예배의 현장에 머물러 있는 것이 더 은혜가 된다.
135편의 시편 기자는 이 진리를 너무나 명백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서 있기만 해도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음을 알았다.
주일 예배에 구리에서, 수원에서, 강동에서, 용인에서, 판교에서 오는 성도들을 보는 감격이 있다.
지난 주에는 경북 영주에서 일부러 찾아 온 성도도 있었다.
그들도 온라인 예배를 드릴 줄 안다.
그러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현장의 은혜를 알기 때문에 온다.
그리고 어김없이 부으시고 채우시는 은혜를 받는다.
‘성전 뜰에 예배하기 위해 서 있는 자’가 되라.
두려움과 어둠은 사라지고, 믿음과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